갈맷길 700백리 걷기, 오늘이 7일 째네요. 폭염주의보가 여전한데 어땠나요?
죽을 맛이었어요. 오늘 총 13km를 4시간 20분 동안 걸었는데, 한 10km 걷고 나서 머리가 띵하더라구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는데, 이렇다가 쓰러지는구나 싶더라구요. 도심을 통과하는 코스라서 더 뜨겁고 힘들었어요.
오늘 걸으신 코스를 이야기해주실레요?
"0910 오륙도 출발 - 0930 백운포 - 1000 신선대 - 1120 재한유엔기념공원 - 1210 부산외국어대학교 - 1240 문현동 장고개 - 1330 부산진시장"의 코스였어요. 유엔공원부터 부산진시장까지는 갈맷길 안내 표지를 찾을 수가 없어서 주요 경유지에서 주요 경유지를 찾아가는 형식이 되어버렸어요. 기왕 만든 갈맷길, 초행자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게 요소요소에 상세한 표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 백운포 입구에서 바라본 영도와 조도
오늘 부산의 낮기온이 33도 였어요. 폭염주의보도 내렸고요. 이런 날씨에 걷는 건 미친 짓 아닌가요?
(웃음) 미친 짓 맞아요. 목적이나 본질을 모른체, 행위만 놓고 본다면 말이죠. 행위만 놓고 보면 일하느라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 못하는 이 시대의 대한민국 아버지들 모두가 미쳤지요. 얼마 전 타계하신 고故 공옥진 여사도 행위만 놓고 보면 미친 게 분명하죠. 그것도 심하게…….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미쳤다고 말할 수 없어요. 이 시대의 아버지 그렇게 일하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헌신이고, 공옥진 여사의 병신 춤사위는 세상의 편견에 대한 도전이라는 본질을 안다면 말이죠. 이 더위에 갈맷길 700리를 걸으면서, 행위만 놓고 보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깨달았어요. 제가 걷는 이유는 마음을 닦기 위함이에요. 덥다고 마음 닦는 것을 멈출 수는 없잖아요?(웃음)
△ 신선대에서 바라본 부산항
지금까지 대략 70km 정도를 걸으셨는데, '걷는다'는 행위에 대해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데카르트의 말을 변형해서,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걷는다는 행위로 인해 보게 되고, 듣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말하게 되고, 쓰게 되더라구요. '걷는다'는 행위를 통해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제가 만든 말이지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보다 더 멋지고 포괄적이지 않나요?(웃음)
△ 부산 수목원 무궁화원
걸으시면서 사진도 찍으시는데 특별히 추구하시는 방향이 있나요?
사진에 취미를 붙인지 한 3년 쯤 됐는데, 여전히 제 사진이 시원찮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철학은 정립했어요. 제 사진에는 가급적 인공과 저연을 다 담으려고 노력해요. 인공은 쏙 빼고 자연만 담으면, 그건 환상을 쫓는 데 불과하다고 봐요. 환상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현실에 기반한 삶을 가치있게 생각하기 때문에……. 또 그런 사진은 제가 굳이 찍지 않아도 인터넷에 널려 있잖아요. 그 사진보다 잘 찍을 자신도 없고요. 아름다운 자연과 험상굳은 인공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자연을 위해서도 더 좋다고 봐요. 제 사진을 보시는 분이 '저 인공만 없었다면……' 혹은 '자연과 인공이 저렇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제 의도는 100% 달성된 것이죠. 이런 저의 생각은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의 영향이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최민식 선생은 '추한 모습도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의 삶이니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거든요.
△ 재한유엔기념공원
갈맷길에 대한 생각도 꽤나 쌓이셨을 것 같은데, 한 말씀 해주실레요?
갈맷길 참 좋아요. 안내 표지나 보행로 등에 대한 불만은 크지만, 큰 맥락에서는 대만족입니다. 우리는 삶의 자취와 현실의 모습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살아내어야 할 남은 세월을 위해서 말이죠. 인류의 삶이 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그렇찮아요? 그런 점에서 강과 바다를 중심으로 만든 갈맷길은 우리의 삶의 자취와 현실의 모습을 보기에 최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가끔은 현실을 떠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도 가봐야겠지만, 그 발걸음도 결국은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갈맷길을 걸으며 우리의 삶의 자취와 현실을, 나아가 나의 삶의 자취와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적어도 제겐 아주 유의미한 행위지요. 이런 생각을 신선대에서 했어요. 신선대에서 나와 우리의 현실을 말이죠.(웃음)
△ 문현동 장고개
오늘 글의 형태가 대담식으로 바뀌었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제 『안철수의 생각』을 읽었어요. 제정임 교수와 안철수 교수의 대담을 정리한 책이죠. 요즘 이런 형식이 대세인 것 같아요. 유행을 따른 셈이죠. 하지만 단순한 유행 따르기는 아니고요, 대담 형식이 제 생각을 표현하는 데 꽤나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형태를 바꿔봤어요. 당분간 갈맷길 여행기는 오늘과 같은 형식으로 가져갈 생각입니다. 오늘까지 총 70.9km를, 18시간 55분 동안 걸었습니다.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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