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당기非非堂記 구양수 지음. 빈배 번역.
저울로 무게를 잴 때, 저울의 팔이 움직이면 정확한 무게를 가늠할 수 없다. 저울의 팔이 고요해지면[靜] 작은 무게까지 가늠할 수 있다. 물로 물건을 비춰볼 때, 수면이 움직이면 잘 볼 수 없다. 수면이 잔잔해지면[靜] 터럭까지 분별할 수 있다. 사람의 경우, 귀는 듣는 것을 주관하고, 눈은 보는 것을 주관한다. 만물의 움직임은 잘 듣고 잘 보는 것을 어지럽힌다. 고요해지면[靜]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해진다.
입신하여 처세하는 사람이, 명리名利와 지위와 명예 등의 외물에 현혹되지 않으면, 그 마음이 고요하게 된다. 그러면 지혜와 식견이 밝아진다. 그러면 옳음을 긍정하고 그릇됨을 부정하게 되어, 하는 일마다 들어맞게 된다. 옳음을 긍정함은 아첨에 가깝고, 그릇됨을 부정함은 헐뜯음에 가깝다. 불행히도 잘못 판단할 경우, 차라리 헐뜯는 것이 아첨하는 것보다 낫다. 군자가 옳음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옳음에 대한 긍정이 군자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요컨대, 그릇됨을 부정하는 것이 더 바른 일이다.
내가 낙양洛陽에 부임한 둘째 해(1032)에 청사를 중수하고, 그 벽에 글을 하나 붙여놓았다. 또 청사의 서쪽에 당堂을 지었다. 문을 북쪽으로 내었고, 사방으로 죽림을 둘렀으며, 남쪽으로 창문을 내어서 햇빛과 달빛이 들게 하였다. 안석 하나와 작은 상 하나를 놓고, 서가書架에 수백 권의 책을 꽂아두고서, 조석으로 머물렀다. 당堂은 고요하였다.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혀서, 고금의 득실을 살폈다. 생각이 이르지 않은 데가 없었다. 때문에 그 당堂에 ‘비비非非’라는 이름을 붙였다.
+) 칭찬은 좀처럼 듣기 어렵고, 비난은 귀를 막아도 파고 들어오는 세상이다. 사람은 자주 오판을 한다. 잘못된 칭찬과 비난은 늘 있기 마련이다. 바르게 살면, 남들이 칭찬해주지 않아도, 마음이 즐겁다. 그릇되게 살면, 남들이 비난하지 않아도, 마음이 괴롭다. 세상의 칭찬과 비난과는 상관없이, 제 삶으로 인해 스스로 즐겁고 스스로 괴롭다. 자의로든 실수로든 최소한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 정치인만은 아닐 것이다. 25살 구양수의 씩씩함이 묻어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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