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화의「하늘꽃」은 슬퍼서 아름다운 소설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실史實의 조각들이, 원래 한 조각이었던 듯하다. 혹자는 이인화를 한국의 움베르트 에코라고 한다. 무엇을 두고 그렇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늘꽃'으로 인해, 소설추방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설 따위는 읽지 않겠다는 마음을 한 풀 접게 된다.
50여 년의 수행이 이만큼 한심할 줄은 스스로도 미처 몰랐다. 그렇게 무수한 염불과 독경과 참선이 젊은 날의 어리석은 마음 자리를 손톱만큼도 옮겨놓지 못했다니. 나는 결국 흐르는 세월을 이기지도 못하고, 불은佛恩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랜 과거로부터 애욕의 고뇌만 헛되이 받아 울부짖는 중생이란 말인가.(13p)
단도 스님의 자책이 단도 스님의 것만이 아니고,
삼생의 인연이 지중하여 지난날 아름다운 그대를 만나 카란에서 언약을 맺고 달 아래 인연을 이루었습니다. 젊은 날의 따뜻한 봄빛, 꿈속에 시들어버리고 오늘 바람 맞으며 그대를 영결하니 이 몸의 한스러움 끝없기만 합니다. 일찍이 고운 언약 이루지 못하고, 한평생 그대를 마음에 품어 파계破戒하는 큰 죄를 짓고 괴로운 윤회를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 아아, 아름다운 그대는 진정 불이不二의 하얀 꽃을 얻으셨나요? 어리석은 이 몸은 지난날이 그리워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세세생생 이 진세를 여의지 못하고 삼계의 아득한 길을 외로운 혼으로 걸어갑니다.(121p)
단도스님의 유언이 더 없이 시리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좋은 소설이다.
하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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