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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티 지하철 화재, 피해자는 대티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잡동사니

by 빈배93 2012. 8. 2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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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적으로 학교 폭력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설문조사다. 교육청에서 학교폭력 책임교사들을 연수라는 이름으로 집합시켰다. 공문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8월 27일 15:30까지 양정 교육연수원으로 오시오. 올때는 대중교통 이용하시고." 시간에 쫓기기 싫어서, 30분 정도 넉넉히 학교를 나섰다. 지하철에서 읽으려고 책도 한 권 챙겨들었다.

 

   대티역 다음 정거장인 괴정역을 향해 걸었다. 갑자기 소방차가 커다란 사이렌 소리를 내며 옆을 스쳐 갔다. '어디 불이 났나보네?' 지하철 역사로 들어서서, 카드를 찍고 플렛폼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안내 방송이 나왔다. "대티역에서 문제가 발생해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급한 용무가 있으시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주십시오. 사무실로 오시면 운임료를 돌려드리겠습니다." '누가 또 뛰어내렸나? 잠시 후면 정리되겠지? 30분 정도 시간이 있으니, 책이나 읽고 있지 뭐.'그런 생각으로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었다. 10∼20분이 흘렀다.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문제라는 게 대체 뭐야?' 슬며시 짜증도 올라왔다. 다시 방송이 나왔다. "대티 역사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급한 용무가 있으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주십시오. 사무실로 오시면 운임료를 돌려드리겠습니다." '아∼놔! 화재라면 복구하는데 시간 엄청 걸리는 거잖아. 진작 화재라고 안내했으면, 바로 일어나서 버스 타러 갔을텐데……. 뭔 안내 방송이 이따위야.'

 

 

   사무실로 갔다. 왠 남자 한 명이 역무원을 상대로 흥분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부산역에서 KTX를 타기 위해서 가는 길이다. 니네 지하철 때문에 못타게 됐다. 어떻게 책임질거냐?" 그런 내용이었다. 역무원들은 우왕좌왕했다. 나는 손을 벌렸다. 공익요원이 표값을 돌려주었다. 현금 1,000원과 무료 탑승권 2,000원짜리를 받았다. '이런 경우에는 3배를 물어주는가보네. 그런데 아무런 확인 절차도 없이 그냥 주면 어떻게 해. 지나가던 사람 아무나 들어와서 달라면 주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허겁지겁 버스를 타러 지상으로 올라갔다.

 

   지상도 마비상태였다. 대티역쪽으로 걸어갔다. 내 생전 그렇게 많은 소방차가 늘어선 것은 처음 보았다. 그러니 당연히 지상의 교통도 마비였던 것이다. 대티 역사에서는 매콤한 연기 냄새가 올라왔다. 그 연기를 뚫고 소방관들이 올라왔다. '끝났나? 그런데 벌써 15시가 다 됐네. 출장은 꼼짝없이 지각이네. 에이 몰라. 사고로 인한 지각이니 할 말은 충분히 되잖아. 그런데 양정에 가려면 대체 무슨 버스를 타야 되는 거야. 스마트폰이라도 있으면 검색이라도 해볼텐데.' 일단 남포동 방향 버스를 무작정 탔다. 중앙동에서 내렸다.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혹시나 싶어서 내려가보니, 중앙동에서 노포동 방향으로는 운행을 한단다. '지하철에서 이런 안내 방송은 왜 안해준거야? 하기야 저희들도 정신없었겠지? 암튼 재수 옴붙었다.'      

 

   양정 교육연수원에 도착하니 15분 지각이었다. 무슨 일인지 그제서야 회의가 시작되었다. 장학사라는 사람이 유인물 하나 나누어주고 그냥 읽었다. 짜증이 확 일었다. '그냥 공문 보내서 읽어보라고 하면 될 것을, 이딴 것 들으려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걸어서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장학사가 말했다. "저희도 이 많은 선생님들을 모시고 싶지는 않았는데, 교과부에서 굳이 하라는 지시가 있어서……. 죄송합니다."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기십명의 승객이 가스를 마시고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한다. 병원에 근무하는 동생은 이런 말을 했다. "저 가스 1분만 마시면, 담배 50년 피운 것 보다 폐가 더 심하게 맛이 가." 사고로 입원하신 시민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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