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육면체 모양의 나무토막 54개를 18층으로 쌓은 다음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하나씩 빼내는 '젱가'라는 게임이 있다. 젱가 게임에서 어느 나무토막을 빼야 전체가 무너지는지 모르듯이, 우리는 아직 어느 종이 사라지면 생태계가 붕괴하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이 다스린 생태계치고 생물다양성이 제대로 유지된 곳을 찾기 어렵다. 우리 DMZ가 세계적인 생물다양성의 보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인간의 접근이 배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정록 시인은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에 흠집이 많다"고 했다.
(최재천, 통찰, 206p. 인용)
그 내용은 차치하고, 문장 그 자체만으로 훌륭하다. 이것이 통섭의 힘인가? 훌륭하다고 느낀 이유를 분석하자. 첫째, 생물다양성에 대한 '젱가'의 비유가 참신하면서 적절하다. 둘째, 이정록 시인을 인용한 것이 적절하다(앞의 문장을 잘 요약했다). 셋째, 옳은 말이기 때문에 앞의 두 기법이 산다(만일 엉터리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한갓 말장난이 되었을 테다).
생물학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생물과 관련되어 보이고, 건축학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건축과 관련되어 보인다. 적어도 뛰어난 학자의 눈은 그렇다. 공자가 말했다. "오도吾道는 일이관지一以貫之"한다고(번역하자면, 나의 도道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꿴다, 정도). 2,500년 전에 벌써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똑똑한 양반. 집사람은 그걸 두고 '깔데기'라고 표현했다. 나는 커서 깔데기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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