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해서, 거의 자동적으로 노트북에 전원을 넣는다. 블로그에 무슨 새소식이 있나, 이메일 도착한 것이 있나 살펴보고, 포털에서 제공한 최신 뉴스의 목록을 뒤적인다. 그리고는 노트북을 덮는다. 당분간 노트북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 그것도 잠시 10분이 채 못되어 또 노트북을 열고 살펴보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한 번 다짐하며 노트북을 덮은다. 매일이 그렇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노트북을 일단 열면 뭐라도 쓰자"고 다짐한다. 쓸 말이 없어서 쓰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노트북으로 자연스레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추측을 하며. 노트북 중독보다는 써 놓은 글이라도 남는 글쓰기 중독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취미로서의 축구·베드민턴·골프·피아노 등은 기능적인 측면이 강하다. 기능은 오랜 시간을 투자하면 숙련되기 마련. - 물론 '고수' 소리를 들으려면, 전문 코치의 도움이 필요할 테지만, 취미 활동으로 즐기는 데는 충분한 시간의 확보면 충분하다. 취미로서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취미로서의 글쓰기는 일종의 기능이다. 충분한 시간만 투자되면, 쓰는 사람·읽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글쓰기가 고도의 정신활동'이라는 일반적 생각은 전문가의 영역에 한정되어야 마땅하다. 취미로서의 글쓰기는 고도의 정신 활동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유희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취미로서의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회의가 종종 닥친다. '이렇게 고생고생하며 써놓은 글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하는 회의. 그러나 회의는 순간적이고, 또 어느 때가 되면 남들이 뭐라고 할지언정, 예기치 못하게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글이 태어났을 때 환희한다. 회의와 환희, 그리고 그 사이의 어떤 지점에서 끊임없이 표류하는 것이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의 숙명이 아닐까. 인걸은 간데 없어도 산천은 의구하듯, 회의와 환희, 그리고 그 사이의 어떤 감정은 흔적도 없이 스러질지라도, 글쓴이의 고뇌와 체험을 담겨진 - 글의 질 여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 글은 의구하게 남아서 개인의 역사를 이룬다. 끝까지 남는 것만이 위대하다면, 글쓰기는 위대함을 남기는 인간의 몇 안되는 유의미한 활동이다.
소설 비슷한 거 쓰는 남자 (0) | 2013.06.16 |
---|---|
장편소설을 시작하기는 했는데 (0) | 2013.05.21 |
글에 붙어 있는 부스러기를 떨어내는 법 (0) | 2013.01.25 |
최재천의 훌륭한 글쓰기, 이게 통섭의 힘인가? (0) | 2013.01.17 |
발가벗는 글쓰기 (0) | 2013.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