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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고르는 방법,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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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배93 2013. 5. 10.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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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름의 기대를 갖고 잡은 책이 지루하면 참 난감하다. 난감함의 정도는 넘긴 페이지에 비례한다. 때문에 억지로 꾹 참고 읽어나가다 보면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 종종 오게 되는데, 그럴 땐 난감함이 절정에 이른다. 포커의 고수는 잘 죽는 사람이라고 한다. 포카드를 잡고도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포커의 고수란 말이다. 책을 읽는 것도 그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 책장을 쉽게 덮지 못하는 나는 고수이기 걸렀다.

 

   사람마다 좋은 책의 기준은 다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애당초 책이라는 것이 다양한 사고방식을 표출한 것이자, 다양한 사고방식을 강화시키는 것이니.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좋은 책의 기준은 책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 없다고, 기준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각자가 가진 기준은 책을 읽어나가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때문에 우리 각자가 좋은 책의 기준을 당장 정립하기는 힘들더라도, 그것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탐색하고 고민해야만 한다.

 

   나는 재미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경험상 재미가 있으면 얻는 것도 많다. 물론 그 반대의 말도 성립된다. 내게 재미라는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책은 책이라기보다는 종이뭉치에 가깝다. 예를 들자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라던지,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같은 책들.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론이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반론을 제기하지는 말라. 이미 밝혔듯이 개인적인 기준일 뿐이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으니. 재미있는 책을 고르는 내 나름의 방법이 있다. 그걸 말하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긴 한데, 길고 거창한 것은 못된다. 아무튼 나의 방법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사진 작가가 작품을 전시하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사진 작가는 수천, 수만 장의 사진을 찍어서 그 중 잘 된 사진 서너 장을 뽑아서 전시한다. 서너 장을 찍어서 그대로 전시한 작품과는 당연히 그 격이 다를 수 밖에. 도서관에 가서 나는 책을 보통 10권 정도 빌려 온다.(교사라서 대출 권수에 제한이 없음은 내게 큰 행운이다.) 그리고 한 권씩 읽어나간다. 아무리 재미없어도 보통 30페이지 정도까지는 꾹 참고 읽는다. 그래도 재미가 없으면 버린다. 도서관에서 가려온 10권의 책 중 끝까지 재미있게 읽는 책은 보통 절반 정도 정도 되는데, 예전에 비해 성공률이 많이 높아진 것이다.

 

   재미있게 읽은 절반의 책은 그 책을 좋아할만한 주변의 선생님들께 읽어보라고 주는데, 책을 읽은 선생님 거의가 다 또 다시 추천해주기를 기다리신다. 하루에 한 권씩 읽는다고 가정할 때 앞으로 40년을 읽어도 15,000권을 넘기기가 힘들다. 이는 도서관에서 읽히기를 기다리는 엄청난 수의 책을 생각할 때, 미미한 양이다. 그게 나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시간은 얼마 없고 재미가 있을만한 책은 무수히 많으니 앞으로도 나의 즐거움은 지속될 것이니. 

 

   또 다른 하나는 재미있는 작가를 찾아서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찾아 읽는 것이다. 이럴 경우 책을 끝까지 다 읽을 확률이 거의 100%에 근접한다. 끝장을 보기전에는 책장을 놓을 수 없는 책이 가끔 있는데, (최근에 읽은 천명관의 『나의 삼촌 브루스리』가 그랬다.) 그런 행운이 오면 해당작가의 책을 싹쓸이해서 빌려와서 읽는 것이다.(어제는 『고래』를 읽었고, 지금은 『고령화 가족』을 읽고 있다.) 아직은 그런 작가가 많지는 않는데, (조정래, 황석영, 댄 브라운, 파울로 코엘료, 알랭드 보통……. 또 누가 있더라?) 그런 작가가 늘어나면 책을 읽다가 중도에 관둘 일도 책을 고르는 괴로움도 없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작가들의 책을 무시로 읽을 필요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책을 읽어서 어떻게 되겠다 혹은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접었다.(그런 강박 관념은 책 읽는 재미를 감소시킨다.) 그냥 재미만 있으면 된다.(남들은 그런 나를 독서쾌락주의자로 볼 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내가 읽은 어떤 책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기는 하는데, 그건 그냥 조용히 지켜만 볼 뿐이다. 그것이 2013년 5월 현재의 나의 독서관이자, 인생관일 듯하다.(너무 거창한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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