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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을 시작하기는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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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배93 2013. 5. 2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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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문학 전집 백 권 쯤 읽어보고 소설을 써라. 그랬는데도 소설이 안 되면 깔끔하게 소설 쓰겠다는 마음을 접어라.」쯤 되는 장정일의 말이 있다. 그래, 여태까지 읽은 것 합하면 백 권은 너끈하니 한 번 해보자, 안 되면 말고, 라는 심사로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내 소설을 통해 내 눈으로 본 내 시대의 모습을 빠짐없이 담으려고 하였다.」쯤 되는 천명관의 말이 있다. 그래, 좋다. 나도 내 눈으로 본 내 시대의 모습을 담아보자. 그런데 뭘 담지? 학교? 쓸 게 많기는 한데, 현직에서 물러나기 전에는 쓰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안 되겠어, 그럼 뭘 담지? 그래, 인생 초반 20년을 살았던 우리 동네의 역사를 써보자, 라는 심사로 똥골 동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누구는 실제 겪었던 일을 수필로 만들고, 누구는 실제 격었던 일을 소설로 만든다. 그건 글쓰는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소설 쪽이 더 자유롭고 재미있는 것 같다. 황순원의 소설들이 대게 그런 식이다.」쯤 되는 말을 수업시간에 지껄였다. 이미 집필을 시작한 후였다.

 

 

2

 

   날로 치면 이틀, 시간으로 치면 대여섯 시간을 즐겁게 글을 썼다. 원고지로 31장 남짓한 분량이 쌓였다. 읽고 또 읽었다. 재미있다. 다른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으나, 어디까지나 설익은 창작자의 욕심일 뿐. 아무튼 내가 재미를 느끼며 쓰지 못한 글이 타인에게 재미를 줄 확률은 별로 없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장편이라고 불릴려면 최소한 원고지 1,000장 이쪽 저쪽은 되어야 한다. 전업 작가 마냥 하루에 원고지 10장씩을 꼬박꼬박 쓴다면 100일이 필요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띄엄띄엄 쓴다면 1년이 걸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껏 나의 행태들을 돌이켜 보건데, 이미 시작한 이 원고가 탈고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탈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글쓰는 재미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쓰다보니 잊고 있었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되살아난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3

 

   똥골 마을은 한 때 실존했다. 재계발의 바람에 마을이 사라진 지 20년이 되었고, 그 시절 어른들은 반은 갔고 반은 남았으며, 마을 제 집마냥 뛰어놀던 꼬맹이도 이제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해방 직후부터 1992년까지 근 50년을 실존했던 마을의 역사는 엄연히 존재하건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록으로 남길 사람은 나밖에 없다. 부산하고도 서면이라는 곳에서 생업을 일삼았던, 가난하고도 가련한 도시 빈민층의 이야기들이 무슨 의미일까를 따져보니, 잘 되면 이문구의 『우리 동네』정도의 의미를 지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한낱 선생 나부랭이의 글이 댈 데가 못된다는 것은 잘 알지만서도.

 

4

  

   만약 원대로 탈고가 된다면 무슨 문예지에 응모해볼까하는 섣부른 꿈도 부풀려 보고, 혹 당선이 못 되어도 내 돈 들여서 출판이라도 해야겠다는, 김칫국을 벌써부터 마시고 있다. 먼저 당선소감부터 근사하게 써볼까 싶다가도, 괜한 짓이란 생각에 이내 접어야지 싶다가도,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이 말끔이 가시지를 않고, 지금 쓰는 이 글로 당선소감 혹은 서문으로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작을 하면 끝장을 보는 성향이 내게 얼마간 있다. 베드민턴과 농구가 그랬고, 블로그가 그랬고, 독서가 그랬다. 모두 한결같이 그 자체로 즐거웠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이, 장편 소설을 쓴다는 것이 그 자체로 오래오래 즐거운 행위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또 설레발이지만, 탈고가 되고 나서, 부모님이 이 책을 보시면 어떤 기분이실까하는 설레고도 민망한 마음을 짐작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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