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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비슷한 거 쓰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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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배93 2013. 6.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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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쯤 됐나? 요즘 책이라곤 안 읽어. 한 주에 한 권 꼴로는 읽었으니, 영 안 읽는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이틀에 한 권씩 읽어치우던 그전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거야. 갑자기 책 읽는 게 재미없어진 건 아니야. 책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게 생겨서 그렇지. 그게 뭐냐면 소설 쓰는 거야. 처음에는 장편을 쓰려고 했지. 한 열흘 썼나? 이 빌어먹을 ‘안 꾸준함’ 때문에, 내팽개쳐 버렸지, 지금은 원고지로 10매 내외의 초단편들을 쓰고 있어. 초단편이라는 용어는 없어. 그냥 내가 만든 거야. 보통 그 정도 분량이면 콩트라 한다고 알고는 있지만, 콩트라는 말이 싫어서 말이야. 한두 시간이면 한 편이 완성되는데, 그걸 10번쯤은 읽는 것 같아. 잘 썼다, 재미있네, 이거 묶어서 책 내면 좋겠다, 그러면서 말이야.

 

   남들이 보기에는 시답잖은 짓거리겠지. 하지만 괜찮아. 내가 언제 남들 때문에 하고 싶은 짓 안 한 사람이었나. 나만 재미있으면 남들의 시선을 깡무시해온 게 나잖아. 자꾸만 쓰다 보니, 소설이란 게 결국은 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싶더라고. 써보니까 직접 보고 들은 게 아니면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더라고. 실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쓰건 변형을 하건 해야지 개연성에 대한 의심을 끌 수 있지, 완전 상상으로 만든 사건은 내 스스로도 개연성이 의심스럽더라고. 그런 나름의 깨달음이 문학 수업을 하는데도 도움이 되더라. 제대로 된 수업을 하려면, 맨날 남의 글만 뜯어먹을 게 아니라, 제 글도 좀 써 봐야한다는 게, 내 평소 지론이었는데, 더 확고해진 거지.

 

   그러고 보니, 대학 시절 소설론 시간이 생각나더라. 개강 첫 시간에 K 교수가 양자택일을 요구했었어. “소설 쓸래? 소설론 수업 들을래?” 완전 황당했었지. 이어지는 말씀이 “소설 쓰는 사람은 수업 들어오지 않아도 좋다. 학기말에 쓴 소설만 제출하면 된다. 자신이 쓴 소설은 각자 응모하고, 당선 되면 상금은 나랑 반반 나누는 거다.”였지.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그 말씀이 거의 다 기억 나는 걸 보니,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야. 아무튼 서너 명 정도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강의실을 나서더라. 소설을 쓰겠다는 거였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은 그냥 소설론을 듣기로 했어. 당시에는 소설 쓸 용기도 없었고,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학점 따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 무지하게 열심히 공부했어. 그래서 받은 학점이 B+였던가? 그런데 뒤에 듣고 보니 소설 쓴 사람은 최하 A였고, 소설론 수업을 들은 사람은 최고 A였다나 어쨌다나. 크게 억울하지는 않았어. 어쨌든 학점에 큰 해가 된 건 아니었으니까. 나이 마흔 다되어 소설 한 번 써볼 거라고 깝죽대다보니, 그때 교수님이 왜 그랬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더라고. 왜 선생님들이 흔히 하는 말 있잖아, 니들도 나이 먹어보면 나중에야 내 말이 뭔지 알게 될 거라는 그런 말. 그게 딱 맞아 떨어진 거지.

 

   암튼 계속 소설 엇비슷한 걸 써 댈 거야. 아마 이 짓을 그만두게 되려면, 쓰는 게 지긋지긋해져야겠지. 그런 날이 올까 싶어. 이미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든 적도 많은데, 하루를 못 넘기고 또 자판을 두드리고 있더라고. 글을 쓰지 않고서는 무료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말이야. 소설을 쓴다는 것이 이 세상에 무슨 의미일지는 생각지 않아. 그냥 하루하루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을 위로 배설하는 즐거움을 누릴 뿐이지. 당장은 그거면 족해. 이제 그만 써야겠다. 그런데 이 글의 장르는 어디에 소속될까? 난 소설이라고 쓴 건데, 알아서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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