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을 몇 개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 실은 여러 책을 잡았으나 번번히 도중에 관두어서 끝까지 읽은 것이 몇 권 되지 못한 것이지만, 그래도 같은 장소에 갔을 때 남들보다 더 즐거운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금도 여전히 눈에 띄는 대로 기행 서적을 집어들고 읽고 관두고를 반복한다. - 지금껏 보아온 것 중에서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단연코 최고였다. 이제는 그런 생각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전문가가 쓴 기행문 중에서 최고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비전문가가 쓴 기행문 - 이케자와 나쓰키는 자신의 기행문을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중간 정도의 위치에서 쓴 것이라고 했지만 - 중에서 최고는 이케자와 나쓰키의 『문명의 산책자』로 말이다. 이케자와 나쓰키는 지구촌을 진정으로 지구촌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이곳저곳 참 골고루도 멀리 다녔다. 그 경험이 『문명의 산책자』로 형상화되었는데, 그 너른 경험이 문제가 아니라, 그래서 이끌어낸 작가의 사유들이 참으로 감칠맛이 난다. 혼자 읽기 아까운 구절 몇 개를 소개하며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인간의 정신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수메르 시대의 미술품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걸 만든 인물은 뛰어난 솜씨를 자랑한다. 그 인물은 이런 공예품을 만들면서 상당히 행복했을 것이다. 왕에게 칭찬을 받았다든가 아니면 자신에 대한 평판이 향상되었다든가 하는 세속적인 이유가 아니라 아름다운 것, 즉 자신이 만족할 만한 것을 만들어냈다는 행복감. (16p)
현대 사회는 오래 사는 건 보장해 주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현대인은 삶에 대한 적극성이 전혀 없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먹이로 무언가를 잡아 순간적인 자기만족을 추구할 뿐이다. 그저 그것뿐이다. 겉보기에는 성장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축소 재생산에 불과하다. 아무도 아름다운 걸 만들지 않는 시대.(16p)
어떤 문화가 만들어낸 것을 제작한 순서대로 살펴보면 초기에는 치졸한 수준이긴 해도 힘이 느껴진다. 그 다음에는 기술과 내면이 조화를 이루는 멋진 시대가 찾아오고 마지막에는 기술이 혼을 지배하는 시대를 맞는다. 어느 곳의 문화도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친다. 인간의 내면을 담는 그릇이 바로 겉모습인데 어쩐 일인지 이런 외관이 주역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 결과가 바로 현대이다.(17∼18pp)
내세의 행복보다는 현세의 이익이 더욱 강했다. 무엇보다 사자死者는 이미 사망했다. 다른 사람이 지켜줘야만 한다는 점에서는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도둑은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훔치면 모두 자신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왕들의 계곡에서도 모든 묘는 도굴된다. 도둑질 역시 사람 삶의 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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