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를 읽으며

독서

by 빈배93 2013. 6. 30. 06:30

본문

   옛 선비들이 중도이폐中道而廢를 경계했다지만, 도무지 재미없는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고역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다가 중간에 관두는 것이 달가운 일도 아니다. 빌린 책이라면 시간이 아깝고, 산 책이라면 돈과 시간이 모두 아깝다. 끝까지 흥미를 유지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는 능력은 선망先望의 것이자 난망難望한 것이다. 이 책 저 책 마구잡이로 읽은 것이 2,3천 쯤 되다 보니, 내 깐에는 요령이랄까 안목이랄까 그런 것이 없는 것은 아닌데, 가장 손쉬우면서 확실한 방법이 작가나 번역가의 이름에 기대는 것이다.

 

   그런 방면에서 신뢰할 만한 번역가를 하나만 들라면, 나는 단연코 이윤기 선생을 들 것이다. 번역 능력도 능력이지만, 번역할 대상을 선정하는 안목이 탁월하다.『장미의 이름』·『그리스인 조르바』·『푸코의 추』……. 어느 하나 문제작 아닌 것이 없고, 깊이와 재미를 두루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굳이 한 분을 더 들자면, 톨스토이를 전문으로 번역하는 박형규 선생을 들 수 있겠다. 움베르토 에코, 니코스 카잔차키스, 톨스토이……. 이윤기 선생이나 박형규 선생의 노고가 없었다면, 대가들의 걸작들을 어찌 맛이나 보았겠는가? 번역가은 제2의 창작자이자, 제1의 인도자引導者이다.

   

   움베르토 에코의『푸코의 추』를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댄 브라운의『다빈치 코드』를 떠오르게 하고, 분위기는 전작『장미의 이름』과 비슷하다. 어려운 낱말이 너무 많고, 문장이 꽤나 난해하다. 인명은 길고 지명은 낯설다. 중세라는 시간도 낯설고, 종교적인 내용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다. <성당기사>라는 말도 처음 들었고, 음모론을 바탕에 깐 서사구조도 부담스럽다. 그런데도 읽는다. 어찌 된 일인가? 모르겠다. 움베르토 에코 썼으니까, 이윤기 선생이 번역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