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우레와 번개가 유난스러웠다. 열린 창으로 비가 들이칠까 봐 벌떡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그러다 결국 잠을 설치고 말았다. 출근해서 교무실에 앉았노라니,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왔는지, 온 세상이 컴컴해졌다. 마친 한밤처럼. 여고생들의 “꺄∼악.”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태연한 채 있었던 나도 은근히 무서워졌다.
장마다. 우리나라의 장마 기간은 보통 6월말에서 8월초까지인데, 그 성질이 워낙 불규칙해서 일정하지는 않다고 한다. 올해 장마는 6월 17일에 시작되었다. 예년보다 열흘쯤 일찍 시작된 셈이다. <장마>라는 단어는 <길다>는 의미의 <장長>과 <비>라는 의미의 <마>가 합성된 단어이다. 국어사전에서는「계속해서 많이 내리는 비」라고 정의하고 있다. 참 멋도 없고 재미도 없고 내용도 없는 국어사전. 같은 장마를 두고 일본과 중국에서는 매우梅雨라고 부른다. <매실이 익어가는 계절에 내리는 비>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장마라는 단어에 비해서 문학적이며 낭만적이다. 삼국 중에서 왜 우리만 유독 장마라는 단어를 쓸까? 민족성이 반영된 것일까?
장마가 오면 몸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눅눅한 습기가 벽지를 타고 흐르고, 마룻바닥은 끈적거리고, 사워를 해도 금세 끈적한 땀이 흐르고, 이부자리에 눕는 것이 무슨 빨아 놓은 걸레 위에 눕는 듯하다. 운전하기에도 불편하고, 기껏 잡아놓은 주말 약속이나 여행 계획은 취소되기 일쑤다. 그럴 때면, 「매우梅雨는 무슨 매우梅雨, 그래, 장마가 딱 맞는 이름이지.」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든 그 눅눅함을 몰아내려고, 숯이며 신문지며 선풍기를 동원해보지만 신통치 않고, 에어컨으로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게 되지만, 선뜻 전원을 넣기도 망설여진다. 전력대란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는 내 상관할 바 아니지만, 감당 못할 전기세는 내달 가계부에 직격탄이 될 수도 있으니. 장마가 끝나고 나면 불볕더위와 열대야가 시작된다. 낮이야 어찌어찌 지낸다지만, 전기세 걱정에 제 홀로 편안한 에어컨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잠 못 이룰 기나긴 여름밤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 장마가 길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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