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한 줌과 시루를 준비해
콩은 작고 단단한 놈들이라 좋고
시루는 너무 크지도 너무 솔지도 않아서 좋아
맑은 우물물에 그 콩을 깨끗이 씻어서
바닥에 얌전히 깔고
한 솥 가득한 어둠을 풀고
그믐 달빛을 한두 숟갈 넣고 저은 다음에
졸졸졸 흘러내리는 물소리랑
새근새근 잠든 막내 숨소리랑
하아암 하는 하품소리로 은근히 졸이다가
잠깐 눈을 붙였는데
아차차 너무 졸아들었네
다시 한 솥 가득 어둠을 풀고
그믐 달빛도 한두 숟갈 넣고
어제처럼 그제처럼 오늘 밤에도
물소리 숨소리 하품소리로 졸여내
그렇게 그렇게 열흘 밤을 졸여내면
엊저녁 육촌 동생 잔치집엘 갔다가
얼큰하게 취해 오신 우리 시아버님
쓰린 새벽 가슴을 풀어드릴 수 있을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