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뮬라크럼(simuiacrum)은 <유사성>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실재의 재현 또는 모방을 뜻한다. 복수형은 시뮬라크라(simuiacra).
● 시뮬라크럼 발명가 폴 래리모어, 시뮬라크럼을 비판하는 책을 쓰는 애나 래리모어,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에린 래리모어. 아버지와 딸,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
○ 제 아버지는 자기가 실재를 포착하는 일, 시간을 정지시켜 기억을 보존하는 일에 종사한다고 자부해요. 하지만 그런 기술의 진짜 매력은 실재를 포착하는 게 결코 아니에요. 사진, 영상, 홀로그래피. 그렇게 실제를 포착하는 기술이 발전해 온 과정은 곧 현실에 관한 거짓말이 늘어나는 과정이었어요. 현실의 모습을 바꾸어 왜곡하고, 조작해서 공상화하는 과정었죠. 사람들은 카메라를 위해 자기 삶의 경험을 형상화하고 단계화해요. 기껏 휴가를 가서도 한쪽 눈은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비디오 카메라에서 뗄 줄을 모르죠. 현실을 그대로 정지시켜 보관하고 싶은 욕망은 곧 현실을 회피하려는 욕망이에요.(215)
○ 아빠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야. 나쁜 짓도 나름 하면서 살았지. 다른 남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하지만 너는 아빠가 가장 약했던 그때 그 한 순간이 네 삶까지 덩달아 지배하도록 놔둬 버렸어. 아빠의 인생 전체를 정지된 그날 오후로 압축해 버린 거야. 아빠라는 사람의 가장 부족한 단면 하나로. 너는 마음속에서 정지된 그때의 이미지를 덧그리고 또 덧그렸어. 이미지에 찍힌 사람이 흐릿해질 때까지. 네가 아빠한테 마음을 닫아 버린 그 세월 동안, 아빠는 오래전의 네 시뮬라크럼을 몇 번이고 돌려봤어. 그러면서 웃고, 농담을 건네고, 일곱 살배기가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자신의 진심을 보여 줬단다. 너랑 전화하면서 엄마가 물어보곤 했잖아, 아빠 바꿔 줄까 히고. 그러고 나서 전화를 끊을 때, 엄마는 차마 볼 수가 없었어. 시뮬라크럼을 또 재생하러 가는 아빠 모습을 말이야. 아빠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 주렴.(223)
● 이미지VS실제, 부분VS전체. 우리 삶에선 늘 전자의 판정승. 있는 그대로의 모습, 전체적인 모습을 봐야 하는데, 어렵다. 켄 리우는 편지를 반전 도구로 참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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