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공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새벽에 비가 내려 촉촉하게 젖어 있는 공원 산책로를 걷노라니, 상큼한 숲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었습니다. 공원내에는 시지정 유형문화재가 몇 개 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꼭 보고 말리라는 생각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찾아나섰습니다.
금강공원 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물래방아 민속공예체험장
○ 민속공예체험장에 팔순은 넘어보이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열려있는 문 안 좁은 방에서 앉아 계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망가진 망건을 쓰고 있는 양반상
이주홍문학비
○ '해같이 달같이 오랠 / 엄마 아빠의 이름'이라는 시구가 마음에 들어옵니다. 금강공원을 나와서 동래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이주홍 문학관이 있습니다. 저번 달에 가 봤는데 문이 닫혀있어서 씁쓸히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인적이 없는 공원산책로
사진작가 독보 허종배 기념비
동래부사 송촌 지석영선생 공덕비 일제 만행 희생자 위령비
○ 지석영선생은 종두법으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우두를 실시한 것 외에도, 한글보급에 앞장섰고, 서울의대의 전신인 경성의학교를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공덕비는 1988년에 후손들이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옆에는 '일제 만행 희생자 위령비'가 있습니다.
Ropeway station. 또는 케이블카 정류소
케이블카 안내 표지판. 운행거리 1260m
○ 독진대아문으로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케이블카 정류소입니다. 안내표지판이 익살스럽습니다. 제 집에서도 케이블카 철탑이 보이는데요, 한 번도 타본 적은 없습니다. 언제쯤 타 볼 수 있을까요?(이 문장이 복선입니다^^)
갖가지 야생화가 자란다는 공원숲길 안내표지판
○ 공원 숲길 표지판대로 ‘독진대아문’ 보고, ‘이섭교비’와 ‘내주축성비’를 보고 민속예술관에 들렀다가 돌아가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제 5호 독진대아문
○ 독진대아문은 380년 정도 된 건물입니다. 원래 동래부 동헌에 있었던 것인데. 일제시대 시가지 정리 과정에서 그냥 이곳으로 옮겨졌답니다. 문 양쪽의 현판을 보면 동래부가 지방사령부 겸 일본 전담 외교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동래금강원 표지석
동래금강원 표지석 옆의 또다른 비석
○ 안내표지판이 없어 직접 해석을 해보니, 동래에 유람 온 노인이 아름다운 풍광에 흥겨워하며 군왕의 은덕에 감사한다는 내용이네요.
시지정기념물 33호 이섭교비. 시지정기념물 16호 내주축성비
○ 내주축성비는 임진왜란후 동래읍성을 수축하고 만든 비석입니다. 이섭교는 수영천에 놓여있었단 교량 이름입니다. 현재 다리는 없고 비석만 덩그라니 남아있습니다. 독진대아문, 내주축성비, 이섭교비, 망미루까지 하나도 제자리에 놓여있지 못하고, 일본사람들이 금강공원으로 다 모아놓았습니다. 그래서 금강공원이 비석의 공원이 되어버렸습니다.
금강원지金剛園誌가 쓰여있는 비석
○ 이 비석이 특이한 것은 일본인이 제작한 비석이라는 것입니다. 위에 비석 위쪽의 몇 자가 훼손되었고, 안내문이 없어 정확한 비명을 알 수 없습니다. 비석 위쪽에 ‘황기皇紀 몇 년에 만든 기념비’라 쓰여져 있는데, 여기서 ‘황기’는 ‘황’은 일본 황제입니다. 일본어로 쓰여져 있는데, ‘금강원이 금정산자락에 위치해 있고, 뛰어난 풍광을 갖고 있어 유람하기에 좋은 곳이다’라는 내용이 쓰여져 있습니다.(이럴 때 한문을 전공한 보람을 느낍니다. 해석이 되잖아요^^ 잘난척해서 미안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비석들을 보고 공부를 하며 이제 곧 공원 뒷문이 나오겠구나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내일은 3편 ‘공원 산책 나왔다가 케이블카 타게 된 사연’을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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