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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의해 강제로 화가가 된 목수이야기,[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독서

by 빈배93 2011. 7. 2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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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 말 · 김진송 글, 현문서가, 2007.

 

7월 15일에 일주일간의 출장에 나섰다.

부산에서 설악산까지 가야하는 먼 여정이었다.

무거운 옷 가방에 넣어간 책 한 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라는 책이었다.

원래는 미술품을 감상하기 위한 안목을 키우려고 고른 것이었다.

그러나 몇 장을 읽다 보니, 이 책은 그러한 애초의 내 의도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 책은 ‘최병수’라는 화가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기대한 즐거움을 넘어선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라는 책을 간단히 말하자면,

‘꼴통 미술가의 세상과의 좌충우돌기左衝右突記’ 쯤이 될 것이다.

최병수는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걸개그림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화가이다.

 

최병수의 출세작,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

'걸개그림'이라는 말도 처음 알았다. 아, 나의 무식이여. 

 

최병수는 중학교 중퇴의 학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화가’라고 불릴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강제로 미술가가 되어버린 사연이 대단히 흥미로웠다.

 

군사정권 당시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미술운동이 있었다.

최병수의 친구 중에 미대를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목수로서 친구를 도와주었던 최병수는

그것이 문제가 되어 경찰서로 끌려가게 된다.

경찰서에 끌려간 후 형사와의 대화나

검찰에 송치되고 난 후 검사와의 대화를 읽다보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도 못 나온 최병수를 어떻게든 직업란에 ‘화가’라고 적기 위한 형사와 검사.

그리고 완전 무식한 최병수의 단순무지한 대답에 열 받아 하는 형사와 검사.

최병수와 형사·검사의 대화가 가지는 엇박자는 코미디, 그 자체였다.

아마 이런 식의 웃지 못 할 사건(?)은 군사정권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모독(?)이었을 것이고,

이에 국가에서 ‘화가’라는 직업을 붙여버린 최병수는 정식으로 화가가 된다.

살면서 최병수만큼 친구에게 큰 영향을 받기도 쉽진 않을 것이다.

중학교 중퇴이지만 미대에 다니던 운동권 친구 때문에 화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은 가방끈이 긴 인터뷰이가 가방끈이라고는 없는 최병수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그런데 최병수는 가방끈을 시종일관 압도한다.

많이 배웠다는 사람이 중학교 중퇴생에게 말빨에서 밀린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한다면,

배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배웠다고 여긴다."는 공자의 말이 적합할 것 같다.

최병수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지만,

독재정권의 폭력과 억압에 몸소 반항했고,

노동자의 힘든 현실이 바로 자신의 현실이었기에 누구보다 잘 알았고,

환경운동 역시 책상이 아닌 현장을 뛰어다녔다.

경험 없는 이론보다는 이론 없는 경험이 우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작품을 만드는 각종 아이디어를 보면,

최병수는 대단히 영리한 사람이기도 한 것 같다.

 

[장산곶매],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최병수의 작품이다. 

 

최병수는 관에서 배척받고 있다.

환경운동을 하는 화가를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미술계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미대도 안 나오고 관습이란 것을 신경 쓰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하다.

이미 그렇게 입문한 미술계고, 애당초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없는 행동가이니.

 

그의 미술은 작업실에서 고뇌하며 나온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면,

그 세상을 깨부수기 위해 나온 전략적 산물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동굴에 황소를 한 마리를 그리면,

실제로 한 마리가 잡힌다고 생각했던 동굴벽화 시절의 화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창기 미술의 그런 주술성에 근접한 미술가 최병수.

물론 본인은 그런 것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의식도 하지 못했겠지만.

 

지구온난화를 다른 팽귄조각. 목에는 '남극대표'라는 패찰이 걸려있다. 

 

최병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장가도 못 갔고, 집도 없고, 돈도 없다.

최근에는 암에 걸렸다가 위를 70%정도 때내었다.

뭐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그것이 그가 자유로울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세상과 타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말이다.

 

이 책에는 그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줄곧 나온다.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고,

그의 작품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예술이 골치 아픈 사고의 과정물이기만 하다면,

나는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고 지목할 만한,

최병수를 알게 되었다는 것도 기뻤다.

 

책 중간 중간에 그의 작품들이 삽화로 나오는데 그것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새만금 해창 갯벌에 만든 그의 솟대에 매달려 있는,

망둥이 · 게 · 갯지렁이가 왠지 최병수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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