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선거판에서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되고 말았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박원순보다 더 주목 받았던 사람이 안철수이고, 덩달아 박경철도 세간에 주목을 받았다. 정치판에 살짝 발을 담근 두 사람에게 여지없이 아르바이트로 의심되는 악플러들이 달라붙었고, 기존 보수 언론 역시 누구를 위한 우려인지 알 수 없는 우려를 쏟아내었다. 나는 안철수도 몰랐고, 박경철도 몰랐다. 내가 아는 안철수는 [무릎팍 도사]에 비친 안철수였고, 박경철은 그런 안철수의 친한 사람일 뿐이었다. 언론의 붓은 나 같은 사람에게 잘 먹혀드는 유용한 도구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을 읽었다. 이제야 박경철을 조금 알았다. 박경철을 통해 안철수도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되었다. 변두리 블로거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자신의 글이 솔직한 자기표현이기를 갈구하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의 보편적인 심정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박경철은 인간 박경철과 상당히 흡사하다고 믿는다. 그를 둘러싼 이런 저런 말들보다, 그가 쓴 책 한권이 보다 정확한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절대적 확신이 되지 못하고, 확신하고픈 희망인 이유는 친일파 문인들을 비롯한 겉 다르고 속 달랐던 역사적 존재들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박경철은 그의 책과 같은 사람이기를 확신하고 싶다.
박경철이 안철수와 함께 청춘콘서트를 다니며 학생들에게 강연했던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삐딱한 주변의 우려와 달리 이 책을 통해 내가 판단한 박경철은 지극히 건강한 사고를 지닌 지성인이었다. 따라서 그가 좋은 선배이자 멋진 친구로 생각하는 안철수 역시 그러할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 책은 ‘방황’으로 시작해서 ‘꿈’과 ‘책읽기’를 거쳐서 ‘정의’와 ‘공정’으로 마무리가 된다. 최근에 내가 읽은 책과 내 고민들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글 솜씨가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글의 내용이 그 아쉬움을 무마해 주었다. 책 한권을 모두 내것으로 만들면 오죽 좋겠는가 마는, 몇 구절이라도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지금 내가 쓰는 리뷰이다. 진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낯선 것과의 조우를 통해 이성이 시작된다.” 이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인데, 가히 ‘생각’의 본질을 관통하는 선언이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습관처럼 반복되는 동작과 행동들은 본능에 의존한 관성일 뿐 생각의 결과로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21)
여행을 가고 책을 읽고, 낯선 어떤 것을 체험해야하는 이유이다. 요즘 내 삶을 온통 지배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이성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관성을 깨어야한다는 것이다.
침묵은 충동에, 감정에 유혹에 흔들리는 나를 관찰하고 경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침묵의 순간 세계에 대한 사색이 시작된다. 침묵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상이며, 관성에 의한 모든 행위를 멈춘다는 의미다. 그래서 타인과 외부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열정이다.(31)
“입 닥치고 살자!” 말을 해도 안 먹힐 때, 내가 자조적으로 자주 하는 소리다. 침묵하는 시간을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도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침묵은 도피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열정이라는 그의 말에 또 다시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침묵은 내 사고를 관찰하고 다시 사고할 수 있는 메타사고를 위한 안내자라는 것을 배웠다.
경제학에서 행복은 가진 것/욕망이다. 그래서 우리는 맹렬하게 분자인 ‘가진 것’을 키우려 하지만, 분자가 자라는 만큼 분모도 같이 자란다. 그 결과 상대적 욕망에 제동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분자가 아무리 늘어도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지 않다.(61)
이 구절이 아마 이 책을 통해 얻은 최고의 구절이지 싶다. 가진 것을 늘릴 수 없었던 농경시대에는 그래서 욕망을 줄이기 위한 금욕주의가 성행했다는 설명이 참으로 그럴 듯하였다. 또 저 가난한 부탄의 국민들이 행복한 이유에 대해서도 훌륭한 해답이 되었다. 어제 집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전에는 수녀나 스님이 되겠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내 아이가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한데도 크게 반대할 것 같지 않아." 집사람이 요즘 책을 좀 많이 읽더니만, 욕망을 줄이는 삶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인가 싶었다. "마누라, 그래도 나는 우리 아이들이 좀더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을 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하고 속물적인 영혼일 뿐인가보다.
완독, 다독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 후의 사유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 책을 읽는 데 투자한 시간 이상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는 지식을 체화하고 사유의 폭을 넓히는 수단이다. 성찰의 실마리를 던져주지 못한 책은 시간을 파먹는 좀벌레에 불과하다.(295)
박경철에 집에는 책이 만 권이 있다고 한다. 우리집에는 책이 천 권 있다. 책의 권수가 독서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십년 전의 모습에 근접한 독서인이 되고 싶었다. 10년 뒤에는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 한 권을 읽고 그 책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좀 더 긴 시간을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분노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公憤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부당한 일을 겪을 때 내가 분노해주지 않으면 내가 부당한 일을 겪을 때 다른 사람도 나를 위해 분노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동정은 비겁한 회피이며 연민에 불과하다.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그를 동정해서 술을 사는 연민은 이기심에 대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우리가 모두 부당함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공분할 수 있을 때 사회는 개선되고 발전한다.(335)
살면서 화낼 일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회피했던 혹은 회피하고 있는 비겁한 내 삶에 대한 고민에 다시 고민을 하나 더 얹어본다.
한 시대의 화두는 그 시대에 가장 결핍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공정’이 될 것이다. 결과불평등은 인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과정의 공정성은 경기 자체가 지속되게 하는 더 중요한 조건이다. 우리나라는 바로 이 부분에서 약점을 갖고 있다.(386)
화두와 결핍, 그 둘의 연관관계. 그렇다면 내 화두는 무엇일까? 내 가족의 화두는 무엇일까? 내 직장의 화두는 무엇일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방식으로 확장시켜서 생각해볼 문제다.
정의관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재차 받는다면 ‘전제에 충실할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유형이건 무형이건 모든 존재에는 존재이유가 있고, 그것이 바로 전제이며, 전제에 충실하면 그 자체로 균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가는 국가의 원리인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 즉 존립의 대전제다. 그런데 만약 국가가 헌법정신을 충실히 구현하지 않거나 의미를 왜곡한다면 그 국가는 존립의 근거가 사라진다. 그런 국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닐 것이다.(391)
전제에 충실할 것, 생각하는 좋은 틀이 된다. 아는 말이었다. 그냥 알기만 했었다. 나 자신과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이 만큼 쉽고도 명확한 틀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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