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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려 죽어도 내가 짠 판에서 살고 싶다, [목사의 기쁨]

독서

by 빈배93 2011. 11.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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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기쁨, , 로알드 달, 도서출판 강, 2008.

 

    「목사의 기쁨40페이지 남짓한 단편소설이다. 흥미로운 소재와 탄탄한 글솜씨가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골동품 수집상 보기스는 수완이 좋다. 농가를 돌며, 높은 가치의 고가구를 찿는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농가로 들어가야 하는데, 보기스는 그 때문에 목사인 척 한다. 값어치 있는 고가구를 발견하면,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흥정을 하고, 매입을 한다. 그리고 매입가격의 수십 배의 가격으로 판매를 한다.

 

    어느 날 한 농가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 의자를 발견한다. 의심 많은 농부를 속이기 위해, 보기스는 의자의 다리만 필요하다고 눙을 친다. 결국 헐값에 의자를 구매하게 된 보기스는 차를 가지러 간다, 의자를 판 농부는 차에 의자가 들어가지 않으면 다시 가격을 깍으려 들까봐 의자의 다리를 떼어내고, 의자는 산산조각 난다.

 

    내가 듣기로, 우리나도 6070년대에 골동품상들이 농촌을 쓸고 다녔다고 한다. 시골 농가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개밥그릇이 청화백자임을 알아본 골동품상들은 엿값정도 주고 가져오기도 했다고 한다. 골동품상들에게 최고의 호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보기스는 항상 승리할 수밖에 없다. 압도적인 안목과 정보까지 갖고 있으니, 평범한 농민과의 전쟁에서 질 리가 없다. 의심 많은 농부라 할 지라도 제가격에 물건을 넘기기는 지난하다. 왜 그럴까? 농부들은 골동품상이 짜놓은 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받아든 농부라도, 그 역시 골동품상의 틀에서 놀아난 것일 뿐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프레임 이론이다.

 

    프레임 이론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며칠 전 낙동강과 나란히 놓인 강변로로 차를 몬 적이 있다. 강가에 보이는 커다란 간판에는 ‘4대강 살리기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만약 ‘4대강 살리기에 반대하면, 문장 논리상 ‘4대강을 죽이자는 것이 된다. 최초의 명칭이 그래서 중요하다. ‘4대강 살리기살리기라는 말이 하나의 틀로 기능하는 것이다. 결국 ‘4대강 살리기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4대강 살리기라는 말의 틀부터 깨어야하는 것이다. 필자는 프레임이론의 많은 부분에 공감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곤 이렇게 자문했다 ‘4대강이 언제 죽었나?’ 이렇게만 생각하면 간단히 그 틀을 깰 수 있다.

 

    누가 짜놓은 판인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화토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판 전체가 그러하다. 나름대로 똑똑하다는 사람도 그 판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 그 판을 짠 사람에게 놀아나는 꼴이 될 뿐이다.

 

    이 소설은 통쾌함을 준다. 그 완벽한 틀 속에서 벌어진 농부의 어이없는 행동과, 그로 인해 받게 될 골동품상 보기스의 허탈함 때문이다. 아무리 단단하게 짜인 틀이라도 인간이 만든 것이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아마도 보기스는 그 이후에도 농민들을 속여가며 엄청난 부당이득을 취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씁쓸했던 악몽을 간직한 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 단단한 틀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가? 주려죽어도 내가 짠 판 위에서 살고 싶지 않은가? 정말로 그렇게 되고 싶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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