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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반신반인도 피해가지 못한 고뇌의 여정

독서

by 빈배93 2011. 12.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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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이현주 옮김, 범우사, 2011.

 

'고전古典'이라 불리는 책들 중에 읽은 것이 몇 권이나 되는가? 우리는 범람하는 출판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한정된 시간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 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어떤 기관에서 정한 필독서 50선이니 100선을 애용하거나, 혹은 베스트셀러 순위에 의존하게 된다. 꽤나 많은 '고전古典'을 읽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사실 '엄청나게 좋았다'고 느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전'이라는 텍스트는 검증된 것이다. 당연히 질적인 측면에서는 하자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최근에 느낀 것은 '고전'이 엄청나게 좋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충분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서 경험과 실제 경험이 충분히 쌓이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엄청나게 좋다'고 느낄 확률이 높아진다. 일례로 나의 경우에는 『논어』가 그랬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그랬다.(혹자는 유홍준의 저서를 고전에 넣기에는 이른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충분히 '고전'답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고전을 접할 것이다. 혹 또 재미가 없고, '뭐가 이러냐?'는 생각이 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내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사고의 깊이가 얕기 때문일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었다. 제목만 충분히 들어왔던 것이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가져와 책상에 꽂아 두었다. 책상에 꽂힌지 무려 한 달 이상이 지나서야 빼어들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대한 대략적 해설은 책표지 뒷면의 것이면 충분하다. 인용을 해본다. 단 문장이 긴 것이 싫어서 임의로 자르고 교정을 보아서 인용한다.(가끔 내용은 좋은데 문장이 지저분한 책을 보면 그렇게 하고 싶을 때가 많다. 너무 많은 품이 들어서 쉽사리 덤벼들 수는 없지만.)

 

"길가메시 서사시는 B.C. 3천년경부터 구전되던 신화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 적어도 1천 5백년 앞선다. 이 작품은 19세기에 와서야 비로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 해독 되었다.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원형적 영웅서사시로서 문학적인 가치도 뛰어나다. 주인공 길가메시는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우룩을 통치하던 왕이다. 3분의 2는 신이고, 3분의 1은 사람인 비극적 영웅이다. 그의 비극성은 이별과 죽음, 인간의 운명에 대한 반항에서 비롯된다. 길가메시는 적 엔키두와 친구가 되고, 신의 형벌에 저항하다 친구를 잃고,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자각한다. 그로 인해 절망하며 '영원한 생명'을 찾아 방황하는 고뇌의 여정을 갖는다. 이는 바로 인간의 내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비극의 모습이다."

 

단군이 B.C.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다. 그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오래 전의 것인지 짐작된다. 호랑이와 곰이 마늘과 쑥을 먹던 시절,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벌써 본격적인 서사시가 지어진 것이다. 문학적인 완성도는 당연히 오늘날의 것과 비교하면 떨어진다. 하지만 최초의 것이다. 거기서 사용된 다양한 문학적 모티브들을 후대 문학작품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이제 누가 『길가메시 서사시』를 물어본다면, 대략은 말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읽어야 할 건 아마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되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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