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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학교2

by 빈배93 2012. 11. 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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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좋게 말하면 귀가 두껍고, 나쁘게 말하면 남의 말을 좀처럼 듣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곱씹고 실천해보고 나서 스스로 인정이 되어야 생각과 행동의 일부분을 고친다. 13년을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화두처럼 생각되어온 말이 둘있다.

 

   하나는 교직에 첫발을 디딘 시점에, 30년 교육 경력을 가진 선배로부터 들은 조언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너무 멀어져도 안 된다.) 당시에는 적당히 해라!’는 말로 흘려들었다. 이젠 그 선배의 의중을 대충은 헤아릴 수 있다. 왜 가까우면 안 된다고 했을까? 남교사가 여고생과 너무 가까워지면 말썽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에게 많은 신경을 써줄수록, 조그마한 마찰에도 더 큰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왜 멀면 안 된다고 했을까? 학생들로부터 완전히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동료 교사들로부터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가까워서 안 됨멀어져도 안 됨은 장자의 쓸모 있음쓸모 없음에 대한 논의와 묘하게 겹친다. 장자는 쓸모 있음쓸모 없음이 모두 인위의 소산이니, 그걸 넘어선 자연의 경지에서 세상을 살아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가까워서 안 됨멀어져도 안 됨은 무엇의 소산일까? 아마 그 무엇은 교사로서의 욕심일 것이다. 말썽 없고, 소외 되지 않으면서, 적당한 재미와 인정을 받으려는 욕심! 세상에 그런 삶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욕심 중에서도 과한 욕심이다. 마땅히 베어내어야 한다. 그 욕심을 베어낸 자리에 무엇을 두어야 할까? 나도 살고 남도 사는, 그래서 모두가 함께 사는, 공존共存!을 두는 것이 어떨까.

 

   또 다른 하나는 최근에 어느 선배 교사가 한 말이다. 내 아이라 생각해 보세요.” 분명 좋은 의도로 한 말이라 생각되지만, 그 내용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었다. ‘나의의 줄임말로, 편협한 의미의 사랑이라는 개념과 이어진다. 편협한 사랑이 무엇이던가? ‘소유집착의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아이라는 말도 순수이라는 개념보다는 뭔가 부족하다는 뉘앙스에 가깝다. 결국 내 아이라 생각해보세요.”라는 말은 학생을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내 소유의 뭔가 부족한 대상으로 보라는 의미로 읽힌다.

 

   교직 경력 13년 만에 이제야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시간이 쌓이면 또 변하겠지만, 당장은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자 한다. 저마다의 삶을 누리면서, ‘더불어공존하는 삶!” 그것이 내가 선생으로서 부모로서 살아가야할 지향점인 것이다. 때로는 그 지향점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하겠지만, 지향점을 상기하며 언제든 잘못된 방향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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