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이 없이 도서관으로 오라고 했다. <독서 시간이니까 어디에서 책을 읽든 문제될 것이 없다.> <독서 시간이니까 오히려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몇 주 정도는 교실 수업과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가, 오늘에야 불현듯 다른 점이 보였다. 자는 놈이 아무도 없다! 그렇게 자지 말라고 해도 자던 놈들이 왜 한 놈도 자지 않는 것일까? 잠자리가 바뀌면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이치 때문일까? 교실에서는 읽던 책이 재미없으면 속수무책인 반면, 도서관에서는 곧바로 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졸릴 여지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도서관 천장이 높다는 사실이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쳐서 일까?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렴 어떠랴? <도서관에 오면 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됐지. <독서 교육은 도서관에서 하는 것이 최선이다.>라는 결론을 얻었으면 됐지. 몇 주 더 지켜봐야겠다.
도서관에 있는 서가를 보면 나도 저렇게 서가를 한 번 꾸며볼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제일 큰 방에 세 개 정도의 긴 책장을 놓고, 거기에 책을 빼곡히 꼽아두고, 남는 자리에는 6인용쯤 되는 넓은 책상을 두고, 의자는 4개만 놓고, 그래도 자리가 남으면, 다기 세트와 커피포트를 갖추어 놓고서, 연로하신 부모님이 가벼운 이야기책을 읽으시거나, 호랑이 같은 아내가 육아 서적을 읽거나, 토끼 같은 아이들이 그림책이며 동화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아무나 무료할 때면 아무 때나 찾아와서 책장을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디에선가 본 중세 유럽의 어느 귀족의 서재 못지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실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족하다.
내년부터는 아마 이런 수업을 하지 못할 듯하다. 과목은 국어요 문학이라지만, 국어와 문학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저 문제를 풀기 위해 지문이나 난도질해댈 것이 뻔하다. 그러니 작년 한 해와 올 한 학기의 <진짜 독서> 시간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바이다. 그래도 변함이 없었으면 하는 것은 평생을 이렇게 책과 가까이 하였으면 하는 마음가짐이다.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료하지도 않은 말 그대로의 취미 생활이 언제나 책과 함께였으면 한다. <내 아이들도 애비의 이런 취미 생활과 같은 취미 생활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 이름으로 나온 책이 내 서가에 꽂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욕심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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