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공사 문고본에 대한 아쉬움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책을 접할 기회가 많다. 그래서 주머니에 쏙 넣어 다닐 수 있는 문고본은 매력적이다. 도서관에서 왕창 빌려온 시공사의 문고본을 이 책까지 세 권 째 보았다. 휴대의 편리함을 제외한다면 나의 선택은 실패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재미다.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좋은 소재를 갖고 이 정도로 재미없게 서술하기도 쉽진 않을 것 같다. 소재의 선택이 책의 성패를 가늠하는 절대적 요소이진 않지만, 이런 드라마틱한 사람의 일생을 이정도로 재미없게 만들다니. 특히나 이 책은 사진만 볼 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의 게으름으로 다른 더 좋은 문고본을 찾지는 못했지만, 좋은 문고본이 분명 있긴 할 것이다. 오늘로 시공사 문고본은 접으려한다.
최근 읽다가 포기하거나 대충 읽은 시공사의 책들
○ 작가로서의 천재적 능력
헤밍웨이 스스로도 자신의 천재적 능력을 일부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명성을 얻은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지식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그는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같은 시간에 좀 더 빨리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났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도록 강요받지 않으며, 자신에게 제시된 검증된 지식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13쪽)
○ 헤밍웨이의 화려한 삶
그의 삶은 화려한 여성편력, 럭셔리한 생활(낚시, 사냥은 더욱 특별하다), 대단한 명성, 그에 따른 엄청난 특혜들의 연속(군법회의에 회부되었지만 그의 명성 때문에 아무도 건들지 못한다)이다. 이런 삶이 작가로서의 영감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는 한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살아야만 뛰어난 작가가 된다면, 그냥 평범한 작가로 만족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필하고 있는 헤밍웨이의 모습과 책 표지
○ 화려한 삶의 뒤편
헤밍웨이는 창작의 기쁨으로 살았고 창작의 고통으로 자살했다. 창작의 행복만을 누리다 갔으면 얼마나 좋아겠는가? 하지만 그도 모든 일에는 그만한 댓가가 필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비껴갈 수 없었다. 노먼 메일러에 의하면 “헤밍웨이는 자극을 얻기 위해 모험을 추구한 용감한 사람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가 겪은 모험담의 진실은, 결국 비겁함과 자살하고 싶다는 유혹과 평생 싸웠다는 것, 그리고 그의 내면의 풍경은 악몽이었으며, 악마들과 싸우며 밤을 지새웠다.(79쪽)”
○ 너무나 힘든 방어전
권투선수가 챔피언이 되어 10차 방어전 정도를 치루는 일은 대단한 일이다. 기간으로 치면 5년 정도가 될까.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로 한 생사의 전장에서 5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헤밍웨이의 다음 이야기는 그의 고단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비평가들의 메카인 뉴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거긴 잠시 들르는 도시일 뿐이지. 아수라장이야.” 그러나 파파는 그에게 던져진 모든 도전에 응하며, 자신의 새로운 작품을 들고서 링 위로 뛰어올랐다. “쉰 살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다시 타이틀 방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야. 나는 20대에 타이틀을 획득했고 30대와 40대에는 방어했어. 나는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시작해서 투르게네프를 이겼지. 그리고 아주 혹독한 훈련 끝에 모파상을 쓰러뜨렸어.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더러 톨스토이가 있는 링 위로 올라가라고 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정신이 나갔거나 아니면 훨씬 더 뛰어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야.”(15쪽)
○ 행복한 작가가 될 순 없나?
대단한 작가들의 일생은 평탄치 못한 경우가 많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나로서는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한다. 내면이 치열한 투쟁이 훌륭한 작품의 반석이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잔잔한 호숫가를 거닐며,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멋있게 삶에 대한 관조를 하는 작가를 꿈꾸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그런 점에서 헤밍웨이의 치열한 삶에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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