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었던가.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주말 새벽에 해인사로 차를 몰아 가셨다. 아버지는 그다지 내켜하지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꼭 해인사의 대장경판을 보고 싶어 하셨다. 두 분은 정오가 되기도 전에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만족한 듯이 보였고,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판자에다 글자 몇 자 새겨놓은 것 보려고 그 먼 길을 다녀왔다. 웬 사람은 그리 많은지……. 느거 애미 소원이라서 다녀오긴 했다만…….”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팔만대장경을 배웠다지만, ‘팔만대장경’이라는 명칭만 알 뿐이었다. 나 역시 아버지의 판자 운운하신 감상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지난 달, 조정래라는 이름에 끌려서 『대장경』을 샀다. 서재에 꼽아두었다 아버지에게 먼저 빌려드렸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아버지는 『대장경』을 읽은 후에 해인사에 다녀오신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러다 손에 잡고서 읽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워드프로세서로 타이핑을 하며 읽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읽는 속도는 무척이나 느렸다. 책을 반쯤이나 타이핑하다가 다음 일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그냥 읽게 되었는데, 1시간 남짓한 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물론 타이핑은 계속할 생각이다.
천천히 타이핑하며 읽으면서, 조정래 소설의 장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 장점이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규칙적은 운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슬로리딩으로 얻은 소득이다.
『대장경』은 1976년에 쓰여진 조정래 최초의 장편소설이다. 조정래는 『대장경』을 집필한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팔만대장경’이 나라 잃은 민중들의 순정한 나라 사랑과 고결한 신앙심의 합일로 이루어진 청정한 영혼의 꽃임을 나는 쓰고자 했다. 왜냐하면 ‘팔만대장경’ 한 장, 한 장은 오늘날 보아도 상상을 초월하는 극치의 예술로, 보는 자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수많은 영혼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위대하고 칼칼하고 싱싱한 예술품의 가치를 쓰고자 감히 필을 든 것이다.
그리고 30여 년이 조금 넘어 유네스코는 ‘팔만대장경’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그 밝은 눈에 고마워한 것이 아니라 그 당연함에 혼자 고개 끄덕였다. 고려 민중들의 예술혼은 그렇게 시공을 초월해 영원을 향해 비상했다.
소설 첫줄을 쓰고, 28일 만에 끝줄을 썼다. 그리고 원고를 가지고 나가다가 세상이 뒤집히는 현기증으로 비틀거렸다. 소설 속의 목수 근필이가 나였는지도 모른다.
판전을 홀로 완성한 목수 근필. 고통받는 민중보다 더 고통스러워한 수기대사. 몽골병에게 온 가족을 잃은 필생 장균. 그리고 무신정권의 우두머리면서 늘 패하기만 했던 최우. 그들이 펼쳐내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대장경』이다.
조정래가 28일 만에 쓴 이 소설을 거의 비슷한 시간을 써서 타이핑을 해야 할 것 같다. 그 속에서 좀 더 작가의 마음에 다가설 수 있다고 믿고 싶다. 해인사에 가고 싶다. 그리고 내 눈으로 그 대장경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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